필로픽쳐스

따뜻함

2017. 12. 1. 13:26 - Fhilo

복귀 날의 아침이었다. 평소 아침을 잘 안먹지만 자대에 복귀하는 날 아침이면 늘 수저를 든다. 5시간정도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가야하는 그날의 여정에 활기를 불어 넣으려는 목적은 아니다. 아침 식사 한 끼로 복귀하는 군인이 활기를 얻기란 여간 쉬운게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수저를 드는 이유는 '따뜻함' 때문이다. 예고없는 다음을 기약하며 복귀를 앞둔 손자에게 복귀날 아침 미역국 한 상은 꼭 차려주고 싶다던 할머니가 어젯밤 고깃간에서 사두었던 쇠고기양지살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겐 늘 자식들보다 손자들이 우선이었다. 받고만 자랐던 손자들은 그런 할머니의 고마움을 이제서야 느끼며 잘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렇게 따뜻한 세식구의 아침식사가 내 복귀날 아침에 이루어진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 날 아침의 햇살만큼은 어느때보다도 따뜻했음을 훗날 기억할 것 이다. 

그 날의 햇살이 따뜻했음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를 역까지 태워다주신 택시기사님의 덕도 있다. 어렸을 때 부터 약속된 시간보다 5분은 먼저 나가있는 태도를 갖추라는 엄마의 예절교육으로 시간 약속 하나만큼은 철저히 지키는 내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나갈 채비를 하느라 소중한 물건을 두고 온 것 이다. 지형상 택시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곳에 집이 위치해 있어 늘 어플리케이션으로 미리 택시를 불러 타는 편이라 오늘도 다를 것 없이 불렀던 택시가 도착했는데 그제서야 두고 온 물건이 떠올라 집까지 되돌아갔다. 다시 집을 나왔을땐 이미 시간이 5분정도 지연 되어 있던 탓에 택시가 기다리고 있는 곳 까지 무작정 뛰었다. 문을 열자마자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는 내게 택시기사님께서 해주신 말을 기억한다. 그러다가 다치면 나라는 누가 지키냐고, 전화해서 있는 곳까지 태우러 오라고 말하지 그랬냐고 웃으며 이야기 하시는 기사님에게서 또 한번 '따뜻함' 을 느꼈다. 숨이 차서 헉헉댔지만 창틈새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이 진정제가 되어 주었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이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아직 나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내가 아닌 어느 누군가들도 이러한 '따뜻함'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음을 바라며 믿는다. 우리의 일상에 또한 나의 오늘 아침같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살을 쬐어주는 따뜻한 햇살 한줄기가 들기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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